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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처럼 빛나는 지적장애인들의 영화이야기
작성일
2008-03-19 09:37

봉천9동 포스터. ⓒ장애인미디어네트워크
▲봉천9동 포스터. ⓒ장애인미디어네트워크 이미지 자세히보기
장애인미디어운동 네트워크에서 장애인활동가들이 만든 영상 작품을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을지로에 있는 중앙시네마로 향하였다. 가면서도 그리 커다란 예상은 하지는 않았다. 장애계에서 미디어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 된지가 이제 겨우 5년 남짓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의 이런 예상을 깨고 지적장애인들이 만든 작품들은 상당히 놀라웠다

몇 년 전 대박을 터뜨린 영화 ‘말아톤’을 비롯하여 ‘맨발의 기봉이’, ‘웰컴투 동막골’이나 ‘허브’ 요즘 상영 중인 ‘바보’에서도 지적장애인들이 나오지만, 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장애 때문에 주위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가족들이 본인을 돕느라 엄청난 고통의 세월 속에 살아가거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천사 이미지로만 고정화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제 본 영화 중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만든 작품 속에서는 기존 영화 속의 박제화 된 이미지들과는 달리 일하고, 놀고, 공부하고, 울고, 웃는 등의 다양한 모습을 지닌 펄펄 살아 숨 쉬는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먼저 ‘봉천9동’이라는 작품은 29세의 총각 지적장애인 민철이의 여자친구 사귀기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는 주인공 민철이가 세차장에서 동료 지적장애인 친구들과 활기찬 모습으로 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료들과 민철이의 관심은 20대 후반의 여느 총각들처럼 주로 이성에 대한 이야기뿐이다. 민철이는 일을 마치고 친구와 호프집에서 술을 한잔 하면서 "베트남 신부와 결혼하면 대화가 잘 안 통할 텐데"라고 하는 친구의 말에 "아냐 어차피 한국 사람들도 대화가 안통해서 이혼을 많이 하자나"라고 한다.

민철은 또 어머니에게도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고 혼기가 됐으니 결혼을 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이에 민철이 어머니도 역시 “너가 여자를 데려오면 결혼을 시켜주겠다”며 태연하게 응수한다. 영화는 이렇게 시종일관 민철이를 비롯한 지적장애인들의 생동감 넘치는 삶의 모습으로 인해 객석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민철은 친구의 결혼 집들이에 가서 여자친구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동료들과 교회분이 마련해준 미팅에도 참여해 보지만 자신만 퇴짜를 맞는 슬픔을 맛본다.

하지만 어느 날 여자친구가 생기게 되어 데이트를 하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데이트비용을 자신에게만 부담시킨다며 여자친구와 헤어진다. 그리고 몇 달 후에 다시 그 여자친구로부터 전화가 오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봉천9동’이 기존의 지적장애인영화들의 한계를 뛰어 넘은 점이라면 먼저 ‘말아톤’의 지적장애인이 친구하나 없이 외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지적장애인 동료들과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이 끝나면 호프집에 가서 같이 술도 한잔하고, 동료의 결혼 집들이에 가서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맨발의 기봉이’의 주인공처럼 이성에 무관심한 어린아이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이성에 관심이 많은 엄연한 29세 총각이며, 자신의 짝을 찾아 부단히 노력하는 젊은 청춘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바보’나 ‘웰컴투 동막골’처럼 세상의 때가 전혀 묻지 않는 순수한 영혼을 지닌 천사 같은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뚜렷하게 표현 할 수 있는 보통 사람이라고 애기하고 있었다.

두 번째 작품은 지적장애인 고등학생들이 만든 ‘숨박꼭질’은 아쉽게도 필자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끝부분만을 조금 보았지만 술래잡기 아이들 놀이 팔짝 팔짝 아이들 발차기라는 동요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지적장애인 학생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 모습을 상당히 밝고 경쾌하기 그리고 있었다.

세번째 작품은 ‘영상으로 전하는 스피크 아웃 (잘있어요,이젠)’은 성폭력 피해자인 지적장애인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목소리와 직접그린 그림으로 표현한다. “공장에서 같이 일하는 남자가 만원을 주겠다며 같이 여관가서 자자고 했다. 엄마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아무도 내말을 믿어 주지 않는다”고 여성은 그 당시 억울했던 상황을 하나하나 토로한다.

하지만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자신의 자학은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한 여성으로서의 억울했던 심정을 판사 앞에 고발하듯 또박 또박 읽어 나가며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그림은 그녀가 입은 상처의 깊이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렇게 이번에 지적장애인들이 주제적으로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영화를 만들 때 비장애인 스텝들이나 교사들이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은 많이 도와줬지만 내용에 관해서는 거의 100% 지적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적장애인들이 기존 미디어의 영향을 전혀 받고 있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존의 미디어가 주로 비장애인의 관점으로만 제작되기 때문에 방송이나 영화에서는 장애인들의 인간적인 다양한 모습 보다는 오직 장애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대부분 미디어에서는 지적장애인에 관한 이야기를 보여 줄 때는 장애 때문에 무엇을 못하는지 장애인 가족 등 주변사람들에게 어떠한 도움을 받는지 만을 집요하리만치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적장애인들은 자신들의 장애 특성상 이런 주류미디어의 태도에 거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을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지적장애인들의 작품과는 달리 다른 유형의 장애인들이 만든 대부분의 작품에서는 기존의 영화나 방송처럼 비장애인 관점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출처: 에이블뉴스